최씽씽의 역사자료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배경 정리




아테네와 스파리트라는 두 강력한 폴리스의 맞대결은 이미 오래전붜 예건된 수순이었다. 페르시아에 대항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소멸된 ㅣ후, 영달의 길을 걷고 있는 성격이 정반대인 두 폴리스는 여러가지 요인에서 피할수 없는 대력을 펼쳐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며, 전쟁의 배경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1. 시대 배경적 요인



세력의 충돌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의 여세를 몰고 델로스 동맹을 발판으로 강대한 제국으로 발전함에 따라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로서 본토에서의 패자로 자처하던 스파르타와의 충돌은 거의 피할 수 없었다.




 에게 해와 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한 아테네가 서부 지중해로 진출하게 되자, 스파르타와 세력권 충돌이 발생한게 된 것이다. 당시 아테네는 솔론 시대 이후 이미 식량을 외부 부입에 의존하였는데, 인구의 증가와 상곡업의 발달로 예전보다 많은 식량과 원료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아테네의 서부 지중해 진출은 불가피하였다.




에우보이아 점령 이후에 체결된 30년 평화조약을 깬 이후 아테네인과 펠로폰네소스인은 전쟁을 시작햇다. 



그들이 평화조약을 깬 이유와 관련해서 나는 이미 그들이 내세우는 불만 원인과 논쟁을 먼저 기록했으므로, 어떤 사람도 그렇게 큰 전쟁이 그리스인들에게 왜 발생했는지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쟁의 원인 중 가장 진실한 것과 관련하여 별로 언급되지 않았어도, 스파르타인은 아테네인들이 강력해지는 것을 두려워해 타인으로 하여금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위의 사료는 아테네의 제국주의 팽창에 대해 스파르타가 위협을 느껴서 전쟁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인데, 이에 대해 아테네는 평화를 유지하는 기간(30년 평화조약)동안 팽창주의 정책을 펼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스파르타가 아테네 제국을 해체하기 위해서 동맹국의 불만을 이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아테네의 서부 진출을 스파르타는 막아야 했고 이러한 두 세력이 부딪혀 전재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2. 직접적 원인








코르키라 문제



30년 평화기간이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기원전 433년, 코린토스의 식민시로 있던 코르키라가 코린토스와 반목하면서 분쟁이 발생하였다 아테네는 이를 이용해 코르키라에 대해서는 동맹을 확보하는 한편 코린토스에게 상당한 간섭을 했다. 



코르키라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에 대한 경쟁심을 조장했다. 기원전 432년에는 코린토스가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에게 호소하자 메가라와 아이기나가 아테네를 비난했다.최씽씽의 역사자료실 (ceaser5712.tistory.com)코르키라가 아테네편에 선다는 것은 이 방면의 해상권을 아테네가 장악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코린트나 메가라를 비롯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시에게 있어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스파르타도 경쟁 관계인 아테네의 성곡을 두려워하던 참이었다. 



결국 동맹국들이 아테네에 대한 전쟁을 가결햇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앞서 협상을 위한 사절을 파견했는데, 협상이 결렬되면서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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