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대왕의 업적에 대해 완벽 정리(1) - 유교정치, 서적편찬, 과학기술 발정, 훈민정음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은 세종 대왕의 업적에 대해 정리해 볼까 합니다. 세종대왕이란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한글 창제라는 업적에만 국한되어 알려진 것같아서 세종대왕의 업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종 대왕의 업적은 정말 많습니다. 제위기간도 길고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길을 잘 닦아 놓아서 매우 많은 업적을 남김 왕입니다.
세종 대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다면 재위기간은 1418 ~ 1450년으로 거의 30년 이상 왕위에 있었습니다. 이름은 이도, 자는 원정 이며 태종 이방원의 셋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 입니다. 부인은 심온의 딸로 소헌왕후 심씨입니다.
그러면 세종 대왕의 업적을 유교정치와 서적편찬, 과학기술의 발전, 훈민정음 반포로 정리하고 나머지 법체계 완성과 불교 정비, 역사적 의의들은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1. 유교정치의 뼈대를 구축했다.
세종 대의 정치는 유교의 정치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의 유교정치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죠. 집현전을 통해 유교적 인재들을 교육시키고 양성하였고, 유교에 알맞은 제도와 의례들이 정비되었습니다.
세종은 태종의 육조직계제를 이어받아 소위 절대왕권체제로 국정을 운영하며 유교정치를 마음껏 펼쳤습니다. 그리고 세종 18년 육조직계제를 의정부서사제로 바꾸면서 정치체제에 큰 변화를 주게 됩니다. 이후 의정부의 힘을 실어주고 언관과 언론에 대해 권위를 높여주어 유교정치는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세종 후반기에 세종의 병이 악화되어 국정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으나 황희, 최윤덕, 신개, 하연 등 의정부 명신들이 의정부서사제 아래 군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며 유교정치의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집현전은 세종 대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집현전은 조선에 처음 설치된 것은 아니고 중국이나 고려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조선 정종 대에도 잠시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집현전은 세종 2년에 설치된 것을 의미합니다.
집현전의 설치 목적은 유교정치를 위한 유교 학문을 소양하는 인재의 양성과 정계 진출을 이룩하는 것이었습니다. 집현전 학자들은 많은 특전을 주어 학문 연구에 몰두하게 하였으며 집현전 학자들의 주요 임무는 중국의 옛 제도를 연구하고 유교적, 기술적 서적들을 편찬하는 것이었습니다.
2. 서적편찬 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켰다.
농사직설
위의 집현전에서 학자들이 편찬사업에 몰두한 결과 많은 서적들이 세종대에 편찬되었습니다. 편찬사업을 주도한 것은 세종으로 세종 대왕의 명령을 받으면 집현전 학자들이 공부하고 중국 서적을 연구하여 서적을 편찬하였습니다.
세종대의 주요 편찬서 목록을 살펴보면 효행록(세종10), 농사직설(세종11), 삼강행실(세종14), 팔도지리지(세종14), 무원록주해(세종14), 향약집성방(세종15), 자치통감훈의(세종16), 한유문주석(세종20), 명황계감(세종23), 사륜전집(세종24), 두시제가주석(세종25), 운회언역(세종26), 오례의주(세종26), 칠정산 내외편(세종 27), 치평요술(세종 27), 용비어천가(세종27), 제가역상집(세종27), 의방유취(세종27), 훈민정음창제(세종28), 동국정운(세종29), 사서언해(세종30), 고려사(세종30) 정도 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훈민정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역대 왕의 경우 편찬을 3개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세종 대에는 20여가지가 넘는 편찬을 하였습니다. 편찬서도 유교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의약서, 천문서, 농서, 지리서 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백성을 생각하는 세종 대왕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편찬하면서 왕의 의도에 따라 학자들이 시행하였지만 세종 대왕 자신도 편찬에 참여하고 몸소 실천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책에 쓰기도 하였습니다.
3. 훈민정음 의 창제와 반포
훈민정음
훈민정음 창제야 말로 세종 대왕의 가장 훌륭한 업적이자 지구상에서도 최고의 업적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 언어를 만든 사람은 세종 대왕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역사적으로 많이 창제되었습니다. 흔히 영어, 스페인어 등을 비롯해 한자, 가나 등이 있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릅니다. 또한 키릴어 등 누가 만들었다고 해도 영어나 라틴어를 변형한 것이지 독창적으로 언어를 만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잠깐 쓰고 사라지는 언어가 아닌 현재까지 이어지는 언어는 당연히 없구요.
사람들 생각에 훈민정음이 세종이 지시하고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훈민정음 기록과 역사스페셜을 보면 한글은 만든 사람은 세종대왕 혼자이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되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창제를 반대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언어를 아는 것은 반상의 법도에 어긋난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이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한글을 완성시키고 보급시킨 세종 대왕은 정말 위대한 군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기술자들을 양성
혼천의
만원 지폐에 있는 혼천의
세종 대왕은 유교정치 발전과 기틀을 마련하였지만 과학기술에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천문대와 천문관측에 큰 발전을 가져옵니다.
세종 14년 에 천문의상이 제작되고 세종 16년에 경회루 북쪽에 석축간의대가 설치됩니다. 이 석축간의대에 혼천의, 혼상, 규표, 바위지정표 등이 설치되어 서운관 관리들이 밤마다 하늘을 보며 천체를 관측하였습니다.
혼천의는 정초와 정인지 등이 옛 책들을 조사하여 설계를 하였고 장영실이 기술자들과 함께 실제 제작에 들어가 세종 1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혼천의는 물레바퀴를 기본 엔진으로 움직였으며 시계장치와 연결되어 천체의 운행을 시간과 날짜에 맞게 같이 돌아가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또한 해시계, 물시계 등이 제작되었는데 해시계는 앙부일구,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 등이 있으며 앙부일구의 경우 도성 특정 위치에 설치해 백성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자격루
물시계에는 자격루와 옥루가 있는데 해시계는 낮에만 쓸 수 있기 때문에 궁중의 시계로는 물시계가 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자격루는 세종의 명에 따라 장영실이 세종 16년에 완성시켰고 경복궁 남쪽 보루각에 설치되어 조선시대의 표준시계로 사용되었습니다.
세종 24년에 정인지, 정초 등에게 명령 칠정산 내편이 편찬되었으며 이후 칠정산 외편이 만들어 졌습니다. 칠정산 내 외편은 조선의 역법의 완성되었습니다.
칠정산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농사를 짓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라는 것을 안 세종 대왕은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한 물건을 제작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측우기는 세종 23년에 완성되어 조선의 강우량 측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또한 도량형과 농상집요, 농사직설 등농서를 편찬하여 백성들의 농사에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상으로 세종 대왕의 업적 중 유교정치, 서적편찬, 과학기술, 훈민정음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세종대왕의 업적 중 법 체계 정비와 불교정리 및 역사적 의의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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