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씽씽의 역사자료실

마리우스와 술라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로마의 지배층은 벌족파(옵티마테스)와 평민파(포풀라테스)로 완전 분열됩니다. 벌족파는 원로원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반면, 평민파는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자영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주자라는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습니다이 혼란한 시기를 틈타 세력을 키운 것은 다름 아닌 군벌들이였습니다. 군벌들은 원로원이 사회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부패와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자, 그 틈에서 성장합니다




당시 벌족파와 평민파는 상호 투쟁과정에서 수많은 장군들의 협조를 받아 상대파를 꺽으려고 했습니다. 이 속에서 성장한 장군들은 각각 벌족파, 평민파를 대변하면서 실권을 잡습니다.

 


가장 먼저 정권을 잡은 장군은 평민파의 <마리우스>장군입니다. 그는 몰락한 평민들에게 직업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무직자, 무산자들을 지원병으로 모집하여 직업군인을 모으는 것이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모병제도이죠. 이것은 2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빈민들은 일정한 수입을 얻는 군인이 될 수 있고, 마리우스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병>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마리우스는 전쟁에 참여한 자신의 병사들에게 전리품을 주고, 두둑한 보상금을 주며, 퇴직후에는 노후보장까지 해주었습니다. 사병들은 로마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리우스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게 됩니다. 마리우스는 이 사병들을 데리고 이민족과 반란군을 격퇴하였으며, 로마 영토 확장에도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암살당한 계기가 된 <로마 시민권>확대를 시도합니다. BC 91년에 이탈리아 동맹시들은 <시민권>을 요구하면서 동맹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마리우스는 그것을 기회로 모든 이탈리아 반도 안에 거주하는 로마 시민에게 시민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이러한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을 군사력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살육했습니다. 피의 살육을 통해 마리우스는 평민파가 추구하는 정책들을 하나 하나 실현하였고, 그라쿠스 형제가 하려다 실패했던 정책들도 다시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벌족파들은 마리우스에게 대항했습니다. 특히, 벌족파 장군은 슐라는 마리우스와 계속 대립하였고, 결국 마리우스를 제거합니다. 이제 로마는 벌족파인 슐라가 종신독재관으로 취임하는 군사 독재 시대가 열립니다. 로마사 2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로마는 독재관이여도 6개월 이상 독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슐라가 이러한 로마의 국가 원칙까지 무시하면서 집권했기 때문에, 로마는 이제 법이 아닌 군부가 다스리는 국가로 넘어간 것이지요. 로마 공화정의 국가 체제는 이로서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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