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론의 개혁에 대한 개인적 평가
솔론 자신은 점차 대두하고 있는 상곡업자 계층에 속해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빚에 시달리는 자작농 계층 출신도 아니었다. 넓은 토지를 가지고 아테네를 좌우해온 명문 귀족 출신이다. 그 역시 역사에 이따금 등장하는 선견지명과 실행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지중해 세계에서는 어느 나라보다도 앞선 '솔론의 개혁'이 아테네를 귀족정치에서 탈피시켜, 폴리스라는 민주적인 도시국가로 탈바꿈시킨 것이 분명하다. 아테네는 이 솔론에 의해 발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것은 개혁으로 힘을 얻은 사람들의 요구로 다시 한 번 개혁을 강요당하는 숙명을 갖는다. '솔론의 개혁'도 이 숙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부자와 군중은 제각기 솔론의 개혁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부자들은 채무 말소로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군중은 솔론이 더 과격한 토지분배를 강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양편이 모두 솔론에게 적대적이었다. 또한 솔론이 직책을 사임한 뒤 약 30년간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음을 고려했을 때 어찌보면, 솔론의 개혁은 결코 성공적인 것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솔론이 일으킨 개혁은 클레이스테네스에 이르는 민주 정치 실현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또 기원전 560년 이래로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시도한 참주 정치는 그 영향력 면에서 미약했는데, 이는 솔론의 개혁이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나아가 기원전 520년에 이르러 아테네산 도자기가 전 유럽을 석권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경제 개혁은 크게 보아 성공을 거두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솔론이 만일 어느 한 편만 들었더라면 참주가 될 수 있었는데도, 그는 나라를 구하고 최선의 법을 만들기 위해 양편 모두로부터 미움 받는 길을 택하였다. 솔론은 위기를 당하여 체제 변화를 동반하는 개혁으로 아테네가 장차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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