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의 변천
1. 초기
- 인종 때는 京師六學(경사육학)이라 하여 여섯 개의 단과대학으로 나뉨
→국자학, 태학, 사문학, 율학, 서학, 산학
(1) 경사육학
① 국자학, 태학, 사문학을 경학이라 일컫고 각각 3품, 5품, 7품으로 한계를 두었다. 국학 태학 사문학의 인원이 각각 300명이라고 전해지지만 합해서 300명일 것으로 파악된다.
② 율학, 서학, 산학은 기술 분야로 8품 이하의 관리나 일반 서민 자제가 응시할 수 있었다. 율학은 40명, 서학과 산학은 각각 15명 내외였다.
- 율학: 법, - 서학: 速記者(속기자) - 산학: 조세 담당, 토지 측량시에 이용
(2) 교육과정
- 효경과 논어는 필수과목으로서 1년간 배우고, 상서와 공양전 중 택일하여 2년 배우고, 주역과를 택일하여 2년 6개월, 예기ㆍ춘추ㆍ좌전 중 택일하여 3년
- 국자감에 3년동안 재학하면 과거 응시자격 주어짐
-초기 교육제도의 변천은 당나라를 따라한 과도기 격이다.
2. 고려 중기
(1) 사학의 융성으로 숙종대에 가서 국학 폐지론이 대두하기까지 함(11세기 초엽)
(2) 사학 융성의 배경
- 최충이 관직 은퇴 후, 학원을 차림 → 9재 학당
- 문헌공(최충)의 무리다 → 문헌공도
- 최충 이후로 고위관직자들이 은퇴 후 사학을 차림 → 12公徒
※최충: 장원급제하여 재상직에 23년동안 재직함. 문하시중을 9년 하고 지공거를 역임했다.
-고려 중기의 교육제도의 변천은 초기 과도기를 넘어 자리를 잡아 사학을 중심으로 교육이 활성화 된다.
3. 관학 진흥책 - 국가 교육제도의 변천
- 사학의 발달에 따른 관학의 쇠퇴
(1) 칠재(七齊): 7개의 전문강좌
- 주역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던 여택제, 상서를 강의하던 대빙제, 모시의 경적재 주례의 구인재, 대례의 복응재, 춘추의 양정재 등 6재와 병학(兵學)을 강의하던 강예재(講藝齋) → 강예제는 무학을 가르친 것이 특징이지만 곧 사라짐
(2) 양현고(養賢庫): 국학에 입학한 학생들 중 공부를 잘하면 장학금을 지급
(3) 도서관 설치: 개경의 비서원, 서경의 수서원
(4) 지방의 향리자제를 향교에서 교육
※ 향교의 정확한 설립을 알 수는 없으나 성종 대로 추정된다.
- 인종 5년에 諸州入學以廣敎導: 향교는 인종 20년에 사료에 처음으로 나타남
- 조선 시대 향리교육 담당이 아니라 敎學奉社(교학봉사)의 기능을 지님 → 명륜당
- 향교는 강당과 사당을 구분
- 향교 입학은 8품 이하의 관리나 일반 서민자제도 입학 가능했지만 향교의 목적 자체가 과거 응시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향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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