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씽씽의 역사자료실

중세도시의 발전 - 1편 상업의 부활



당시 교역 양상의 변화로 인한 상업의 부활이 시작된 것을 통해 중세 도시가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알 수 있다. 부활된 상업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지방 시장에서 이루어진 일상적인 교역이었다. 



심경과 삼포제, 농기구의 발달로 이루어진 농업 혁명으로 인하여 생산물이 많아지자 농노와 자유농민들은 여분의 수확물들을 시장에 내다 팔았던 것이다. 점차 이것이 발전하여 도로 건설 기술의 향상과 말과 노새의 이용, 교량 건설 등을 통해 육상 수송이 발달하였고, 더욱이 상품이 전문화되면서 각종 물품들이 물길을 이용해 배에 실어져 원격지로 보내게 되었다. 즉, 육상, 해상 수송이 활발해짐에 따라 상업이 크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업의 부활은 새로운 대금 결제방식과 상업적 기법의 발달을 필요로 했고,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유통 수단으로서 거의 사용되지 않던 주화가 다시 서유럽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장원은 거의 자급자족이었고, 그 밖의 일부 필요한 품목들은 물물 교환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주화가 꼭 필요하게 되면서 초기엔 소액면의 주화만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서유럽에서 사치품 교역이 성행하면서 화폐 단위가 급격하게 커져 13세기에는 피렌체 및 베네치아 등의 이탈리아 국가들에서는 금화도 주조되었다. 




또한 원격지 상인들도 그와 비숫한 발전 양상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처음엔 행상과 다를 바 없는 떠돌이 장사꾼이었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점차 국제무역시장에 상품을 내다 진열하고 판매하는 일이 가장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 중 가장 번창한 무역시장은 프랑스의 상파뉴 지방에서 열렸다. 



이곳에는 당시의 명품이었던 플랑드라 산 직물이라든가, 이탈리아 사인들이 동방에서 가져온 향료 등이 진열되고 판매되었다.



상파뉴와 브리의 백작들의 보호와 후원 아래 6개의 정기시는 각각 2개월 정도씩 지속되었다. 상업상의 한 해는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라니에서 새해의 다음 날에 시작하여 2월 중순의 사순절 중간 직전의 월요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틀 후인 수요일에 정기시는 바르-쉬르-오브에서 열렸고 예수 승천 주간 월요일까지 열렸다. 바로 그 다음날부터는 5월의 정기시가 더 큰 프로벵 시로 이동하여 열렸다... 각각의 정기시는 서서히 시작했는데, 대략 8일에서 10일간은 상인들이 숙박소와 창고를 설치하는데 할애되었다. 



그 후 직물시장이 열렷고, 10일 간에 직물시장 다음에 11일째에는 가죽과 모피 제품의 판매가 허용되었다. 그 다음날에는 향신료와 지방 토산품 판매가 시작되었다. 약 52일의 한 주기 내에서 정기시는 서서히 막을 내렸고, 참가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음 정기시로 향하였다. 


내닛아부-루고드,『유럽패권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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