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씽씽의 역사자료실

중세도시의 발전 2편



그러나 그 후 1300년대에 이르러 무역시작은 쇠퇴하였다. 왜냐하면 부유한 상인들은 이제 선단 전체를 이탈리아로부터 북대서양 연안으로 보내고, 자신들은 본국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 장소에 머물면서 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인들은 동업, 신용장, 회계 등 근대적인 경영 기법을 발달시켰다. 이들 기업가들은 이익 추구를 위해 의돚ㄱ으로 무역에 투자하고 정교한 신용장치를 고안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화폐경제와 신용장치의 확대가 일어나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또한 삼림과 황무지의 개간으로 도시가 팽창하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급속한 성장도 맞물려 일어나게 된다. 중세에는 교역의 교통로를 따라 수많은 도시들이 새롭게 등장했으며, 



또한 로마 이래 명맥을 이어오던 기존의 도시들은 방대한 규모로 확대되었다. 특히 도시는 이탈리아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 또한 그러했다. 베네치아, 제노바, 밀라노, 볼로냐, 펠레르모, 피렌체, 나폴리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의 성립이 농업 중심적 유럽사회에서 아직 안정된 위치를 갖지 못했던 상인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보호수단을 마련하고 아울러 그들의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설립히기 위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만 도시가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도시 발전의 이유로는 당시의 인구의 급증에 따른 과잉 인구와 생산의 증대의 결과로서 잉여생산으로 인한 내지무역에 기인한다는 주장이 있다. 유럽 인구는 1300년 대에 로마 멸망 직후와 비교하여 2배로 증가하였으며,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저지대 지방, 영국에서의 인구 증가가 두드러졌다. 



더욱이 농노의 수는 감소하고 자유민의 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증가된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은 그 기원과 경제적 활력을 원격지 무역보다는 인근지역의 번영과 부에 입각하고 있었다. 도시는 인근 지역에 시장과 수공업자들이 만든 공산품을 제고했던 반면에 도시 인근지역은 도시에 잉여 농산품과 공산품 원료를 제공했으며 인구를 유입시켜 주었다.



 이처럼 도시와 인근 지역은 공생관계를 유지하였고 이러한 전반적인 경제의 활기, 1000년을 전후로 하여 서유럽 전체에 걸쳐 두드러졌던 인구의 성장과 농업 생산력의 발전은 도시 형성 및 발달의 주요 원인이었다.



도시가 번창하기 시작하자 많은 도시들은 각각 전문적인 특성을 갖기 시작했다. 파리와 볼로냐는 일류대학들을 육성함으로써 부를 획득하게 되었다. 베네치아, 제노바, 퀼른, 런던 등은 원격지 통상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밀라노,겐트, 브뤼주 등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가장 중요한 도시 산업은 직물 제조업이었는데, 이는 때로 대규모 생산 및 투자 기법을 발달시킴으로서 근대적 공장제와 산업 자본주의의 선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공업은 중세 경제의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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