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씽씽의 역사자료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시대에 김부식(金富軾) 등이 기전체(紀傳體)로 편찬한 삼국의 역사서. 1145(인종 23) 국왕의 명령을 받은 김부식의 주도 아래 최산보(崔山甫) 8명의 참고(參考)와 김충효(金忠孝) 2명의 관구(管勾)가 편찬하였다. 이들은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서 함께 작업했지만,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와 머리말, 논찬(論贊) 및 사료의 선택, 인물의 평가 등은 김부식이 직접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진삼국사기 표에는 사대부가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 중국 사서는 우리 나라 사실을 간략히 적었 고, 고기(古記)는 내용이 졸렬하므로 왕·신하·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규범을 후세에 남기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편찬 동기를 기록하고 있다. 구성은 크게 본기(本紀) 28, () 9, 연표(年表) 3, 열 전(列傳) 10권으로 이루어졌다.



본기신라 12(신라 5, 통일신라 7), 고구려 10, 백제 6권으로 구성되어 신라에 그렇게 편중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정치·천재지변·전쟁·외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정치 부문은 축성(築城)과 순행(巡幸), 관제 정비와 인사 이동, 조상과 하늘에 대한 제사라는 종교 관례 등이 서술되어, 당시 삼국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축성은 백제가 가장 많아 늘 전쟁을 치렀음을 보여주 고 있으며, 순행은 1·2월에 많이 했는데 고구려와 백제는 수렵을 목적으로 한 것이 많았던 반면에, 신라 는 구휼과 권농 및 수렵 등 다양한 목적을 띠고 있었다. 인사 이동은 신라에서 가장 빈번하였으며, 종교 관례는 백제에서 많이 하였다. 천재지변 부문은 혜성·유성·일식·가뭄·홍수 등 600여 회의 천재와, 지 진·화재 등 330여 회의 지변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주로 정치적 사건을 예언하는 기능을 하였다. 전쟁 부문은 전체 440여 회의 전쟁이 발생하는데 대체로 고구려는 이민족, 백제는 신라와 전쟁하였다. 외교 부 문은 620여 회의 교섭기록이 있는데 주로 조공(朝貢)을 중심으로 한 대중국 외교가 많았다. 물론 삼국은 독립국가로서 외교관계를 맺은 것이며 중국에 종속된 것은 아니었다.



연표··하로 구성되었는데 내용이 소략하다. ()BC 57(박혁거세 즉위)부터 274(미추 왕 13), ()275(미추왕 14)부터 608(진평왕 30), ()608(진평왕 30)부터 935(경순왕 9) 신라가 멸망한 다음해인 936년 후백제의 멸망까지 기록되어 있다.


 



1권은 제사와 악(), 2권은 색복(色服거기(車騎기용(器用옥사(屋舍), 3~5권은 신라 지리, 6권은 고구려·백제 지리, 7~9권은 직관(職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지리지가 가 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통일 뒤에 넓혀진 영토 관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사지는 5()·3()에 대한 설명이 많이 차지하고 있고, 악지는 악기·가악(歌樂(악공, 직관지는 중앙관부·궁정관부·무관과 외직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열전기전체의 역사서로서는 열전이 빈약한 편이다. 전체 69명을 대상으로 했지만 특별히 항목을 분 류하지는 않았다. 1~3권은 김유신 열전이고, 4권은 을지문덕·거칠부 등 8명의 열전, 5권은 을파소 (乙巴素) 10명의 열전, 6권은 강수(强首최치원 등 학자들의 열전, 7권은 관창(官昌계백(階伯) 등 순국열사 19명의 열전, 8권은 솔거(率居도미(都彌) 11명의 열전, 9권은 연개소문·창조리(創 助利) 등 반신(叛臣)의 열전, 10권은 궁예·견훤 등 역신(逆臣)의 열전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 동안 이 책에서 가장 주목되어 왔던 것은 사론(史論)의 성격을 지닌 논찬(論贊)이다. 논찬은 신라본기 10, 고구 려본기 7, 백제본기 6, 열전 8개 등 모두 31개가 있다. 내용은 주로 유교적 덕치주의, 군신의 행동, 사 대적인 예절 등 유교적 명분과 춘추대의를 견지한 것이지만 반면에 한국 역사의 독자성을 고려한 현실주 의적 입장을 띠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신채호 등이 비난한 것처럼 사대적 인 악서(惡書)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이 단순히 사대주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이것이 편찬된 시기와도 관련된다. 즉 이 책은 고려 귀족문화가 최고로 발전하던 시기의 산물이었다. 이 런 시대는 대체로 전 시기의 역사를 정리하는 때인데, 특히 당시에는 거란 및 여진과 전쟁한 뒤 강력한 국가의식이 대두하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지 유교정치 이념의 실현만이 아니라 국가의식의 구 현이라는 차원에서 편찬되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은 전근대 역사서의 특징인 술이부작(述而不作)의 객관성을 유지했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고기》 《신라고사(新羅古史)》 《구삼국사(舊三國史)》 《삼한고기(三韓古記)와 최치원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및 김대문의 화랑세기》 《고승전》 《계림잡전삼국지》 《후한서》《위서(魏書)》《진서(晉書)》《송서(宋書)》 《남북사(南北 史)》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등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