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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전쟁 - 3차원정 테르모필레 전투 2



<1편바로가기>



저번 1편에 이어 계속 써내려 가겠다.

페르시아의 공격을 아테네 단독의 힘만으로는 막기 어렵다고 판단한 아테네는 자신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그리스 국가들과 동맹을 형성했다. 동맹회의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 국가들이 함께 협력해야만 페르시아를 패배시킬 수 있다며 단합을 강조하였다.




테미스토클레스




각국 대표들은 서로 간의 적대관계를 불식하고 전쟁을 종결하기로 결의했으며 그리하여 오랜 숙적 아테네와 아이가나 사이의 적대감도 해소되었다.




그리스의 큰 목적에 충실한 그리스인들이 이제 모여서 서로 약속하고 보장했다. 그리스인들은 무엇보다도 적대감을 해소하고 서로 간에 벌어지는 전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벌어지던 전쟁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아테네 인과 아이가나인 간의 전쟁이었다. 



나중에 크세르크세스의 병력이 사르디스에 있다는 것을 알자, 그리스인들은 왕의 동정을 알기 위해서 아시아로 밀정을 보내고 아르고스에는 페르시아에 대한 동맹을 맺기 위해서 사절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위험들이 모든 그리스인들을 똑같이 위협하는 한 그리스가 통일되고 화합하여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희망했다.



                        헤로도토스, 『역사』




그리스는 먼저 테살리아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페르시아 군을 맞이했으나, 페르시아 군이 이곳을 우회하는 바람에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하고 철수함으로써 북부 그리스를 포기해야만 했다. 




두번째 방어선은 테르모필레였는데 이곳은 험난하여 소수의 병력으로 능히 대군을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통하는 자로부터 우회하는 간도를 알게 된 페르시아 군이 그리스군의 배후에 나타남으로써 포위된 스파르타의 용사들은 끝까지 싸워 레오니다스 왕 이하 전원이 전사하였다. 이부분은 영화 300 으로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스파르타~~~~~~~~~~~~~~~~~~~~




테르모필에에서는 절대 열세의 상황에서도 접전이 벌어졌고 바다에서 아테네 함대는 페르시아 함대와 맞섰다. 그러나 테르모필레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이 다른 길로 우회하여 그리스군을 덮침으로써 결국 요충지를 빼았겼고 동시에 벌어진 아르테미시온 해전에서도 그리스 해군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후퇴하고 말았다. 이에 중부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항복하고 페르시아 군은 아티카 평야로 내려왔다.




이를 지상에서 대적할 수 없음을 안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시민을 살라미스로 철수시키고 아테네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신들에게 물어보고자 델포이에 신탁 사절을 파견하였다. 여사제 피타아는 아테네인들에게 집도 도시도 버리고 도망쳐서 페르시아 인들이 아테네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하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비탄에 빠진 신탁 사절은 다시 신탁을 구하였다. 그러나 두번째 신탁에서 '나무로 된 성벽이 아테네를 구할 것이다'는 말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놓고 시민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였다. 일부 원로들은 '나무로 된 성벽'은 아크로폴리스의 언덕의 나무 우리를 뜻하고 해안에서 떨어진 섬 살라미스를 언급한 것은 그곳에서 페르시아와 싸우기를 피하라고 경고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 등 다른 일부 사람들은 '나무로 된 성벽'은 새로 건조된 함대를 뜻하고 살라미스를 '신성한'이라고 말한 것은 살라미스는 아테네인들에게 승리의 장소이고 페르시아 인들에게는 죽음이 손짓하는 곳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해저에서 결전을 시도하였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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