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전쟁의 결과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페르시아 제국은 종전 뒤에도 여전히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다시 있을지 모르는 페르시아의 재침에 대비하기 위해 각 폴리스들이 동맹을 맺어 공동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렇한 상황에서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을 통하여 그리스 전체에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테네는 단독으로 페르시아에 맞섰던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전쟁기간 내내 한 번도 항전을 포기하지 않은 구심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델로스 동맹은 아테네를 맹주로 하여 탄생하였는데, 델로스 동맹이라는 명칭은 델로스 섬의 아폴로 신전에 공동자금을 비축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중앙, 그리스, 테살리아, 에게 해의 여러 도시, 소아시아의 도시국가로서 구성된 이 동맹은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할 연합합대의 조직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델로스 동맹자금이 맹주국인 아테네로 옮겨졌으며, 아테네가 제국화 되는 토대가 되었다. 아테네는 일단 동맹국이 된 국가는 탈퇴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강행하고, 탈퇴를 희망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했다.
아테네 시민들을 제외한 동맹국들의 반감을 살 수 밖에 없는 정책을 폄으로서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충돌할 소지가 많았다. 전쟁 재연의 불씨가 이미 지펴진 것이다.
그리고 최초로 아테네인들은 그리스 재정관이라는 관리계층을 신설했는데, 이들은 포로스(동맹국의 의무 분담액)를 징수했다.
이 말은 돈으로 기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처음에 정해진 분담 총액은 460탈란톤이었다. 금고는 델로스 섬에 있었고 회의는 신전에서 했다.
아테네가 동맹국 주도자였는데, 동맹들은 처음에는 자치적이었고 총회에서 결정을 내렸으며, 페르시아 전쟁과 지금 치르는 전쟁 기간에 야만인들, 반란을 일으킨 동맹국, 그리고 가끔씩 충돌한 펠로폰네소스 사람들에 대해서 전쟁을 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 큰 업적을 이루었다.
내가 이것을 쓰면서 곁길로 나간 이유는 나보다 앞서서 페르시아 전쟁 이전 그리스의 역사 사건이나 페르시아 전쟁에 관해서 언급한 사람들이 이 주제를 생략했기 때문이다.
『아티카 역사』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다룬 유일한 사람이 헬라니코스다. 그런데 헬라니코스는 그 문제를 간략하게 언급했으며 연대도 정확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것은 아테네인들의 제국이 어떤 식으로 수립됐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달력에서 2월은 왜 28일까지 있는 이유- 율리우스력, 윤년 윤달 (0) | 2018.06.01 |
---|---|
미국 독립 전쟁 -1 미국과 영국의 관계 (0) | 2018.05.29 |
페르시아전쟁 - 3차원정 테르모필레 전투 2 (0) | 2018.05.20 |
페르시아전쟁 - 3차원정 테르모필레전투 1 (0) | 2018.05.17 |
페르시아 전쟁 - 제 2차 원정 마라톤전투 (0) | 2018.05.16 |